어디에 있든, egal wo

아센바흐의 지도

2021.11.1-20, 오래된 집













감정의 지도

전시장에 펼쳐진 책들, 책으로 이름 붙여진 조형물들은읽는대신보는행위를 위한 사물로 변한다. 토마스 만의 소설<베니스의 죽음>에서 자신을 매료시킨 소년 타지오를 쫓아 베니스의 골목을 헤매는 아센바흐처럼, 관객들은 책들 사이의 미로를 따라가지만 그들이 찾는 내용은 끝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아주 개인적인 스토리에서 출발한 삐뚤삐뚤하고 단정한 작업들 사이를 연결하는 다양한 경로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오래된 집의 커다란 창을 가리는 담 <보온>2009년 작품을 2021년도에 다시 제작한 작업이다. 밝은 미색의 벽돌들은 올 10월에, 노랗게 변한 벽돌들은 2009년에 만들어졌다. 이 전시에 소개되는 작업들은 이만큼의 간격을 지닌 시간 동안 작가의 삶이 변화해온 과정을 따라 책, 드로잉, 입체작업의 형상으로 변모해온 작품들간의 경로를 따라간다. 그것들이 어떤 경로들로 진행되어왔는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최종적으로는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쫓는 것이 이 전시의 목적일 것이다. 며칠 동안 작업들을 오래된 집이란 낯선 공간에 어울리도록 놓고 다시 옮겨보길 반복하며 추적해본 결과 그것은 어떠한 감정의 변화임을 작가는 발견했다. 가족을 포함한,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들이 작업과정 속에서 추상적인 형상들로 번역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형상에서 보는 이들이 작가가 느낀 원래의 원초적인 감정들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본인 작업의 출발점을 항상 어떤 개념이 아니라 감정에서 찾으며, 작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험들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사물로 설명하고 싶어한다. 작가의 작업 중간중간에 생산되는 인쇄물 형태의 책들은 이러한 유동성을 견고한 언어란 틀로 구획 짓는 이란 형식을 통해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업 나름대로의 논리를 만들어나가려는 시도이다.

작가의 책들은 삶이 변함에 따라 예술적 관심사 또한 이동해온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어머니에게>(2007), <아버지에게>(2007), <제주도의 책>(2016)은 작가가 독일에 머물 당시의 작업들의 중심주제였던 가족에 관한 작업들이다. <보온>(2009/2021)의 벽돌들 또한 어렸을 때 찍은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아버지가 입었던 스웨터의 문양에서 출발한다. 더불어서 작가는 자신의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책들>(2010)이나 작업실 책상을 뒤집어 물을 담을 수 있는 욕조로 변화시킨 작업에서 보여지듯, 주변의 사물들이 지닌 조형성에 주목하는 작업들을 진행해 왔다. 2013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책 상자>연작은 관객들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대신 상자 주위를 이동하면서 상자 표면에 붙어있는 이미지들을 보게 되는 일종의 입체 책이다. 당시 독일에서 돌아와 마땅한 작업실 없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사물들로 작업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작가에게 상자는 흥미로운 작업재료가 되었다. 납작하게 펼쳐지기도, 단단한 사각의 형태로 접혀지기도 하는 이 평범한 종이상자들은 무언가를 담고 포장하기 위한 일상의 사물 이전에 입체와 평면의 경계에 놓인 재료로 다가온다. 2018년의 개인전 <그림 인덱스>이후 책 상자는 좀 더 그림(이미지)과 가까워진다. 상자 표면에 예술관련 인쇄물들을 질서정연하게 붙이던 기존의 방식에서 더 나아가 상자에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구멍을 뚫거나, 다양한 재료로 형상을 만들어 붙이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기존의 책 상자가 아카이브와 기록물의 성격을 지닌다면 현재의 책 상자는 감정과 정서를 담고 있는 몸체에 가깝다. 최근에는 고대 그리스 도기의 표면에 그려진 그림들, 소실점과 투시원근법이 사용되기 이전의 예술작품들이 지닌 독특한 평면성을 관찰하는 중이다. 가장 최근의 책 상자에 오래 전 작업<욕조>의 재료였던 타일이 다시 사용되는 것처럼, 작가의 작업들은 옛 작업들에서 사용했던 재료나 미쳐 주목하지 않았던 작업의 과정들을 다시 반복하는 가운데 천천히 변화한다

<아센바흐의 지도>

21.11.1-20_오래된 집

아티스트 토크_ 21.11.20.토 4시_ 진행: 유지원 

Atist Talk_20.11.2021,16pm_with Jiwon Yu

전시 리플렛 exhibiton leaflet

전시 브로셔 exhibiton brochure


작업들,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