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든, egal wo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5: 동송세월(同送歲月) 
2015.8.13-8.23, 철원 동송읍 금학로 일대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2015

책에 꼴라주, 드로잉, 15,5 x 22,5x 2,5cm
책 안에 등장하는 글과 그림들의 출처 목록과 같이 철원 성당에 설치 

4월 초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의 철원 투어에 참여하여 처음으로 철원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안보관광 코스에 속한 제2땅굴과 철원 평화전망대는 전쟁과 분단의 비극적 상황들을 떠올리게 했고, 얼음 창고나 월정리역, 노동당사 건물에서는 묘한 향수를 느꼈다.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펼쳐진 철원의 넓은 평야와 동송 시내는 안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평화로웠다. 각각의 장소들은 오히려 ‘전쟁’이나 ‘안보’ 등의 단어들이 불러일으키는 획일화된 이미지나 감정들로만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인상들을 남겼다. 그런 까닭에 나는 DMZ를 둘러싼 하나의 큰 개념에서 작업의 출발점을 찾는 대신 철원의 곳곳에서 받은 인상들을 풀어낸 스케치를 담고 있는 책을 제작하였다. 작업의 재료로 쓰인 미하일 레르몬또프(Mikhail Lermontov)의 시집은 80-90년대 한국의 특수한 이념 대립의 상황 속에서 기획된 ‘열린책들’의 러시아 문학 총서들 중 한 권으로 그 당시 청소년기를 보낸 나의 기억 속 사물이기도 하다.

스케치 한다는 것은 어떤 장소에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그 장소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 곳의 역사, 내부적
상황들보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모습들에 관심을 두는 작가의 태도를 의미한다. 그렇게 바라본 장소의 모습들은 결국 관찰자 개인의 기억으로 연결된다. 책 안에는 군 초소 건물이나 군복의 카모플라주, 교회와 성당에 놓여있던 주보와 헌금봉투, 비와 햇살을 맞아 쭈글쭈글해지고 희미해진 주택가 벽면의 광고물 등 동송에서 수집된 자료에서 출발한 스케치들이 등장한다. 그 사이사이에 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을 다루고 있는 미술잡지 기사들, 아르코미술관의 «한반도 오감도»展 브로셔, 크리스 마커(Chris Marker)의 사진집 『북녘사람들』 등 디엠지를 둘러싼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미술 작업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한 글과 그림들이 끼어든다. 여기에 덧붙여진 기차표, 지도 드로잉 등은 오랜 기간 동안 서울과 제주, 한국과 독일, 서울과 철원 등의 장소들에 머물고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 장소들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진 작가의 이동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종이에 디지털프린트, 21 x 29,7cm,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