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인덱스
2018.10.4-17,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것을 나타낼 때 때때로 우린 ‘그림 같다’ 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주로 다양한 예술 공간에서 수집한 인쇄물들을 재료로 책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나의 책들은 기존의 제본된 종이 책의 형태에만 머물지 않고 종이상자, 석고, 돌 등의 재료와 결합하여 공간 속에 놓이는 조형물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림과 인덱스란 두 단어의 낯선 조합은 전시를 구성하는 각각의 작업들이 마치 어떤 책의 목차처럼 서로 연결됨을 암시한다. 동시에 전시의 풍경이 하나의 그림처럼 기억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여기서의 ‘그림’은 캔버스 천에 그려진 그림뿐만 아니라 내가 보고 경험하는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서는 다양한 그림의 형태로 기억됨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 그리움이란 말과 아마도 이어져 있을 그림의 의미에도 가까운 듯하다.
나에게는 어떤 매체를 다루든 결국에는 그 안에서 회화적인 것을 찾으려는 습관이 있다. <책 상자>는 내가 수집한 인쇄물들 속에서 발견한 다양한 형태의 글과 이미지들을 어떤 책의 페이지 위에 드로잉 하듯 상자의 면에 붙여나간 작업이다. 이 인쇄물 파편들을 서로 이어 붙이고 다시 떼어내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나는 여러 색과 강약의 터치들이 쌓여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에 비유해본다.
<제목들-청주>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청주시내 간판들의 글자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던 경험에서 유래한다. 재래시장 근처 상점들의 유머 섞인 상호명, 다양한 시술 방법들을 노골적으로 광고하는 병원광고들, 예전 기억 속 서울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그 큰 글씨들의 풍경들은 친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몇백 년 전의 책 직지를 홍보하는 문구나 조형물을 발견하는 느낌은 묘했다. 밀랍으로 찍어낸 간판의 글자들, 작업일지 속의 영화목록들이 <책 상자>를 둘러싸고 있는 글들과 뒤섞인다. 저마다 다양한 모양을 띠고 있는 문자들을 떠올리고 새기고 찍어내는 과정에서 글들은 그 의미를 잃고 그림처럼 다루어진다. 공간 속에 펼쳐졌던 전시는 다양한 그림 인덱스를 묶어낸 책으로 이어질 것이다.